지난 1년 동안 교내의 일명 ODAR (Office of Development and Alumni Relations)에서 사무조교로 일하면서 어떤 동문을 학교로 초대할 것인지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초대할 동문을 선택하는 조건은 첫 째, 가급적 교내에서 제공하는 모든 전공 분야에서 동문을 초대하는 것, 두 번째는 그 전공 분야를 대표 할만한 ‘좋은 균형’을 가진 직업군을 골고루 초대하는 것이다.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우선 연락망에 있는 전공과 회사 이름을 기준으로 1차로 분류한다. 그리고 회사 이름으로 한 번 더 필터링을 하고 나면 조만간 계획 중인 교내 행사 (커리어페어)에 참가할 의향을 타진하기 위한 연사 리스트가 완성된다. 초대가 불발되면, 위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친다.

그 소위 말하는 ‘좋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때로는 동문의 이름 보다 회사 이름을 먼저 보는 일이 많았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당시엔 이보다 효율적인 초대 방법이 없었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돌이켜 보니 한편으론 조금 씁쓸하다. 사람의 이름 보다 회사 이름을 먼저 찾게 되다니. 하지만 어쩌면 회사 이름으로라도 ‘찾아지는 동문’이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취업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출근 풍경 (Photo by Hirofumi Yamamoto, 닛케이아시안리뷰)

한국, 일본의 전철 밟을까

물론, 취업은 언제나 어려웠다. 내가 첫 직장을 찾으려고 고군분투 하던 2012년 가을에도 그랬다. 그 후에도 취업은 늘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척박한 취업 시장의 암울한 미래가 우려되는 까닭은 한국 경제에서 조금씩 발견되는 일본화 현상 (Japanification)의 신호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인 0.4%를 기록했다. 이는 OECD 36개국 중 33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일본 경제를 수렁에 빠뜨린 디플레이션이 가시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았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생산성 저하도 앞서 일본이 걸었던 길이다. 우리나라 생산연령인구 비율은 2012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생산가능연령 인구가 빠르게 노화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보면, 2026년 이후 국내 잠재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경제 성장이 둔화된 현 시점에 유연하지 않은 두 나라의 기업문화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미 2016년에 LG경제연구원은 당시 한국의 청년 실업 실태가 20년 전의 일본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자산 버블이 붕괴되며 물가가 하락하고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디플레이션이 찾아오자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자연스레 고용을 줄였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타(フリーター)가 새로운 노동 계급으로 떠오를 정도였다. 2001년에 일본의 프리타 수는 2백만 명을 넘어섰고, 2003년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10.1%에 달했다. 일본은 지속되는 디플레이션과 엔고 현상을 극복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엔화를 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일본 경제의 악순환을 끊고자 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베노믹스의 출발이다.

그 결과, 현재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올 2월을 기준으로 2.4%로 개선되었지만, 고용의 질까지 개선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그럼에도 일본에선 청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부서가 아니면 해당 직장을 선택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고 하니 좁디좁은 취업문을 통과해야 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한국 청년에게도 그런 꿈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근시일 내에는 희박하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아베노믹스 같은 대규모 경기 부양 정책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고, 이미 일본화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 경제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일본 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불황이 시작됐던 1990년대 일본보다 국민소득이 낮고, 국가부채비율이 높다”는 점을 들어 한국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악의 경우, 한국의 청년들은 과거의 일본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프리타라는 선택지조차 없을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지됐던 토익시험이 두 달 만에 실시된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경원중학교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발열 확인 및 손 소독제를 바르고 있다. (뉴스1)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충격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 속에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로 한국의 취업 시장이 더 흔들리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한국의 취업 준비생 (이하 취준생)들의 취업 준비에 빨간 불이 켜졌다. 취준생이면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토익 시험이 줄줄이 취소됐고, 코로나19가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자 4월 26일 시험이 재개되었으나 두 달 간의 취소로 시험 접수 자체가 어려워졌다. 나만 해도 준비하고 있던 시험이 2월 말을 기준으로 연속 세 번이나 미루어 졌다. 날짜가 정확히 정해진 것이 없으니 언제까지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 가에 대한 불안함과 아예 시험을 볼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초조함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사태로 기업들의 직원채용 계획이 틀어지고 있다. /잡코리아 (조선일보)

여러 시험 취소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설마 했던 채용 감소가 시작된 것이다. 필요 시 인원을 충족하는 서구의 채용 시스템과 달리 한국에서는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대규모 공개 채용 (공채)을 진행하는 관습이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자 많은 기업이 채용을 이전처럼 진행할 수 없었고, 신입 채용 공고 자체가 전년 대비 17.2%나 줄었다. 아예 공채를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 곳도 있어 취준생으로선 코로나19가 있던 기회조차 빼앗기는 계기가 됐다. 그나마 대기업에선 롯데를 필두로 삼성이 채용 진행 의사를 밝히며 메마른 취업 시장의 단비가 되어주었지만, 이마저도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취준생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다시 한 번 시작된 것이다.

앞서 한국 청년들은 프리타가 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미 현실화 되었다. 아르바이트생 한 명 뽑는데 2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니,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취업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된 것이다. 지난 가을에 NOVAsia에 쓴 글에서 한국 경제를 힘들게 하는 많은 요인 중 하나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바탕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을 꼽은 바 있는데, 코로나19로 최저임금을 걱정하는 것을 넘어서 아르바이트 자리의 존재 유무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한국 경기 침체의 방패막인 해외 수출길도 막혀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 일은 더욱 더 요원해 보인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달 수출이 크게 줄어 무역수지가 99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서 버린 것이다.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이 그랬던 것처럼 채용을 줄일 확률은 더 높아졌다.

아, 이제 정말 희망이 없는 걸까.

새로운 일상 속 새로운 채용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바뀐다. 포기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과 어쩔 수 없겠다는 마음이 공존하며 두려운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럼에도 쉽게 단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일상에서 일어난 변화가 이제 조금씩 일상으로 변해가는 데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3월 16일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장기전에 대비한 새로운 일상을 침착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채용 시장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더 얼어붙고 있지만,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준비하며, 채용 문화도 바뀔 수 있다.

4월 4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와스타디움에서 안산도시공사 직원 공개채용 필기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시작은 지난 4월 4일 치러진 안산도시공사 공개채용 필기시험이었다. 안산도시공사는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축구장을 빌려 필기시험을 실시했고, 좌우 5m 간격으로 140여개의 책상과 의자를 놓아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한 바 있다. 현대모비스의 경우는 온라인 인적성 검사와 화상 면접을 도입해 비대면 채용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의 60%가 향후 수시채용만 진행할 것으로 밝혔다. 코로나19로 잠시 채용이 주춤하는 듯 하지만, 채용이 아예 사라졌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조금씩 다시 채용의 문이 열리고 있고, 취준생은 새로운 채용 문화를 준비하며 자신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취준생을 위한 배려도 필요

그럼에도 졸업을 목전에 둔, 다시 취준생이 된 입장에서 바람이 있다면, 생활 방역을 강조하는 새로운 일상 속에 생긴 새로운 채용 풍경인 ‘언택트 채용’이 조금은 천천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미 취준생들은 본격적인 채용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위로할 만한 대목이지만, 여전히 불안감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택트 채용의 실시 주체가 회사라는 점에서 온라인 적성검사, 화상 면접 등을 준비하는 기업의 준비에 우리 모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채용 과정에 기업만 준비할 것이 아니라 취준생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허락해 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면, 그건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최근 인턴 사원 채용을 시작한 11번가는 지원서 제출부터 면접까지 모든 채용 과정에 언택트 방식을 도입했다. (팍스경제TV)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준비하며, 우리 경제는 이미 전세계 성장률 마이너스 3%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을 언급하며 현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내놓았지만, 한국판 뉴딜이 AI, 자동화, 비대면 중심의 대형 IT 프로젝트란 점에서 문과생으로서의 고민이 깊다. 기술 발전 속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인재’가 되기 위한 고민을 당분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취준생은 취업 시장에서 한없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 선택되길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라는 행운을 잡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취업하기 좋은 환경도 필요하다. 현재처럼 대기업이나 정부에 채용 자체를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 지나친 임금 격차 등을 포함해 고용 환경 전반을 개선한다면, 취준생들이 지금처럼 회사 이름 자체에 몰두하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이력서를 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기다려야 하지만, 조금씩 상황이 개선된다면 회사 이름 보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일본의 꿈같은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실현될지 모른다.  

졸업 후에 내가 앉았던 사무조교 자리에 앉을 누군가도 언젠가 내 이름 보다 회사 이름을 먼저 찾게 될 것이다. 언젠가 ‘찾아지는 동문’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새 일자리를 찾고 싶은 내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